개성...
2008년 7월 16일 개성을 다녀왔습니다. 개성, 참 가까운 곳이더군요. 남북출입 사무소를 지나 DMZ 안에 나있는 도로를 5분도 달리지 않으니 어느새 북측 출입사무소, 수속 밟고보니 개성공단은 바로 여기에 붙어있고, 개성시내도 5분거리? 황진이께서 목욕을 하셨다는 박연폭포도 차로 30분 거리? 물론 교통체증도 없고, 길에 남측 관광단 말고는 아예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긴했지만요.
여튼 북, 남측 사람들 모두 서로 상당히 많이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북측 일반 주민들과 관광객이 만날 상황은 통제가 되고 있기도 했고요. 현대아산 직원들과 북측 안내원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형-오빠-동생으로 부르는 사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안내원들에게 이런 저런 술을 마구 권하는 남측 아저씨들의 태도도 평양에서와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개성은 남과 북 사이의 차이를 잘 드러내면서도 공존에 대해서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빨리 변하는 북의 모습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간 학생이 샀던 '들쭉 사이다'와 내가 마셨던 '귤탄산단물'의 포장을 보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마 북쪽의 이런 모습들은 정말 빠르게 변화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그들이 어떻게 느낄 지, 앞으로 바라보는 것도 인류학자에겐 매우 중요한 현장이 될 것입니다.
물론 변화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느껴지더군요. 우리와 역사를 보는 시각과 인식이 다른 겁니다. 고려시대 노비의 가격, 그리고 농민항쟁 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왤까요? 이러한 농민 항쟁의 최종 결과물이 현재 북한 정권이라는 결론을 위한 포석이겠죠. 그럼에도 왜 봉건적인 고려의 왕과 장군이 중요한 것인지, 누구를 은유하고 있는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북한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라는 것은 절대적이지도 정답이 있을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역사는 상대적인 것이며 역사를 두고 우리는 각자의 관점과 맥락에 의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친일파 인명사전도 같은 맥락이죠. 남과 북, 어느쪽의 역사 인식이 옳다고 단정짓기 전에 무엇이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의미짓는가를 살피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비교문화적 관점이란 이럴 때 작동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변화나 발전을 좋은 것으로 느낍니다. 그러나 사람의 취향이란 것은 단번에 변하지 않습니다. 『굿바이 레닌』이라는 독일 영화를 보면 동독 시절의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피클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어머니는 통일된 사실을 모르지요)와 그 어머니를 찾아온 사람들이 동독 시절을 재연하면서 다시 향수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어색한 탄산수 유리병이 남쪽처럼 페트병으로 변한다고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북한은 분명 변하고 있고, 변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남쪽의 우리보다 더 큰 변화에 따른 고통을 겪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부담 없이 넘길 수 있도록 인류학 같은 학문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버스를 타고 박연폭포로 이동하면서 보이던 풍경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산길을 따라 보이는 마을 입구마다 군인이 한 명씩 서 있다는 겁니다.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물론 총을 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복을 입고 마을 입구마다 부동자세로 서있죠. 왤까요? 함께 간 선생님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버스가 사고라도 나면 바로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랍니다. 역시 '선군정치'(!)죠? 북한군이 남쪽 관광객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모든 것의 선봉, 우선, 모범인 선군(先軍) 답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측 관광객이 지나가는 시간에만 서 있을 것이란 겁니다. 즉, 남측 관광객과 북측 주민 모두에게 "여기까지"라는 무언의 암시를 주는 것이죠. 관광객에겐 여긴 남쪽이 아니라는 무언의 압력, 주민들에겐 괜히 자본주의에 찌든 저 놈들과 접촉할 생각 말라는 내용의.... 그런데 그렇게 막아도 어쩔 수 없는 변화는 누가 뭐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선 인민의 나라에 담장이 쳐져있다는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더 중요한 것은 그 담장 안과 밖이 다르다는 겁니다. 손으로 갈아 만든 밭에 심어져 있는 것은 옥수수와 콩 등 거칠고 많은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작물들입니다. 담장 안도 멀어서 옥수수만 확인되지만 그런 작물들이겠죠. 그런데 담장 안과 밖의 옥수수 크기가 확 눈에 들어옵니다. 담장 안은 아마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것으로 허용되는 것이겠죠. 이제 막 무릎 높이 정도로 자란 들판의 옥수수와 달리 담장 안의 옥수수는 담장의 높이를 훨씬 넘어 자라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왜, 어떤 이유로 어디의 옥수수를 더 열심히 키우고 어느 곳의 옥수수는 그냥 자라도록 놔두는 것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겁니다.
마지막으로 소설 『1984』에 나오는 신어-이중언어에 대해... 북한 안내원들과 대화할 때 느껴지더군요. 분명 평양보다 훨씬 열려있지만 여전히 여기에도 이중언어의 사고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중언어에 대해서는 소설을 한 번 읽어보시길. 이건 북쪽 뿐 아니라 누구라도 신문이나 언론의 언사를 읽을 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요즘같은 공안정국(?!)에는. (20080723 heavyjoe)
남쪽과 달리 조미료 맛이 거의 나지 않는 냉면은 맛있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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