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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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7월 16일 개성을 다녀왔습니다. 개성, 참 가까운 곳이더군요. 남북출입 사무소를 지나 DMZ 안에 나있는 도로를 5분도 달리지 않으니 어느새 북측 출입사무소, 수속 밟고보니 개성공단은 바로 여기에 붙어있고, 개성시내도 5분거리? 황진이께서 목욕을 하셨다는 박연폭포도 차로 30분 거리? 물론 교통체증도 없고, 길에 남측 관광단 말고는 아예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긴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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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2007년 가을 평양을 다녀온 경험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방문한 북한-개성의 시간과 공간은 느낌 자체가 상당히 다르더군요. 물론 함께 간 사람들 자체가 학생들인 것과 학자 및 시민운동가들의 모임인 게 다른 것도 한 원인이긴 하겠습니다만. 평양의 안내원들이 지금껏 만난 남측 인사 대부분이 일반 관광객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남측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여유 있으면서도 언제나 어떤 '선' 같은 게 있었습니다. 남한 사람을 10년 이상 만나온 안내원에겐 신참을 짝으로 붙이는 방식에서도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선'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남쪽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무래도 평양을 찾는 사람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공무'나 어떤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밤에 만찬이 있으면 처음에는 함께 마구 마시다가도 술이 취할 즈음이 되면 안내원들은 살짝 사라지는 일도 빈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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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에서 다르다고 느낀 원인의 하나가 바로 이 안내원들이고. 이들은 남쪽의 아무런 목적의식이 없는 일반인과 접촉한 북측 인사들이라는 겁니다. 관광객들 중에는 맥주를 몇 박스 싸와서 가고 오는 버스 안에서 파티를 하는 단체 야유회 팀도 있고, 전세계 어디서나 자유인이신 강한(!)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습니다. 금강산처럼 주변에 군사지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양처럼 중요한 건물이 있지도 않은 개성 시내는 사실상 그다지 통제할 것이 없는 곳이기도 하죠. 500명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괜히 한 명을 찍어서 사진 한 장, 한 장 뒤져서 시내를 찍은 사진을 지우라는 요청을 받았던 한 학생처럼 특별히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진 촬영도 별 문제가 없고. 그들 나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시내를 굳이 외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일반인을 북한 시민들이 전면적으로라도 만나는 것은 개성이 최초인 듯 싶습니다. 금강산처럼 고립된 섬(운전기사와 많은 인원을 북한 주민이 아닌 조선족 동포를 쓸 뿐 아니라 마을과도 완전히 경계지워진)이 아니기에 과도한 통제는 오히려 독이된다는 것을 체득적으로 느낀 것일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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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튼 북, 남측 사람들 모두 서로 상당히 많이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북측 일반 주민들과 관광객이 만날 상황은 통제가 되고 있기도 했고요. 현대아산 직원들과 북측 안내원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형-오빠-동생으로 부르는 사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안내원들에게 이런 저런 술을 마구 권하는 남측 아저씨들의 태도도 평양에서와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개성은 남과 북 사이의 차이를 잘 드러내면서도 공존에 대해서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빨리 변하는 북의 모습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간 학생이 샀던 '들쭉 사이다'와 내가 마셨던 '귤탄산단물'의 포장을 보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마 북쪽의 이런 모습들은 정말 빠르게 변화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그들이 어떻게 느낄 지, 앞으로 바라보는 것도 인류학자에겐 매우 중요한 현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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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변화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느껴지더군요. 우리와 역사를 보는 시각과 인식이 다른 겁니다. 고려시대 노비의 가격, 그리고 농민항쟁 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왤까요? 이러한 농민 항쟁의 최종 결과물이 현재 북한 정권이라는 결론을 위한 포석이겠죠. 그럼에도 왜 봉건적인 고려의 왕과 장군이 중요한 것인지, 누구를 은유하고 있는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북한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라는 것은 절대적이지도 정답이 있을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역사는 상대적인 것이며 역사를 두고 우리는 각자의 관점과 맥락에 의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친일파 인명사전도 같은 맥락이죠. 남과 북, 어느쪽의 역사 인식이 옳다고 단정짓기 전에 무엇이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의미짓는가를 살피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비교문화적 관점이란 이럴 때 작동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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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우리는 변화나 발전을 좋은 것으로 느낍니다. 그러나 사람의 취향이란 것은 단번에 변하지 않습니다. 『굿바이 레닌』이라는 독일 영화를 보면 동독 시절의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피클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어머니는 통일된 사실을 모르지요)와 그 어머니를 찾아온 사람들이 동독 시절을 재연하면서 다시 향수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어색한 탄산수 유리병이 남쪽처럼 페트병으로 변한다고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북한은 분명 변하고 있고, 변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남쪽의 우리보다 더 큰 변화에 따른 고통을 겪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부담 없이 넘길 수 있도록 인류학 같은 학문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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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점에서 버스를 타고 박연폭포로 이동하면서 보이던 풍경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산길을 따라 보이는 마을 입구마다 군인이 한 명씩 서 있다는 겁니다.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물론 총을 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복을 입고 마을 입구마다 부동자세로 서있죠. 왤까요? 함께 간 선생님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버스가 사고라도 나면 바로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랍니다. 역시 '선군정치'(!)죠? 북한군이 남쪽 관광객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모든 것의 선봉, 우선, 모범인 선군(先軍) 답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측 관광객이 지나가는 시간에만 서 있을 것이란 겁니다. 즉, 남측 관광객과 북측 주민 모두에게 "여기까지"라는 무언의 암시를 주는 것이죠. 관광객에겐 여긴 남쪽이 아니라는 무언의 압력, 주민들에겐 괜히 자본주의에 찌든 저 놈들과 접촉할 생각 말라는 내용의.... 그런데 그렇게 막아도 어쩔 수 없는 변화는 누가 뭐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선 인민의 나라에 담장이 쳐져있다는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더 중요한 것은 그 담장 안과 밖이 다르다는 겁니다. 손으로 갈아 만든 밭에 심어져 있는 것은 옥수수와 콩 등 거칠고 많은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작물들입니다. 담장 안도 멀어서 옥수수만 확인되지만 그런 작물들이겠죠. 그런데 담장 안과 밖의 옥수수 크기가 확 눈에 들어옵니다. 담장 안은 아마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것으로 허용되는 것이겠죠. 이제 막 무릎 높이 정도로 자란 들판의 옥수수와 달리 담장 안의 옥수수는 담장의 높이를 훨씬 넘어 자라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왜, 어떤 이유로 어디의 옥수수를 더 열심히 키우고 어느 곳의 옥수수는 그냥 자라도록 놔두는 것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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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완전 고용을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당연히 실업자라는 개념이 없죠. 그리고 그 완전고용을 통해서 노동을 하는 대신 누구나 배급을 받아서 생활을 합니다. 물론 개성시내에서도 자주 눈에 띄는 '청량음료'집처럼 맥주집(개성에선 보지 못했지만 평양에선 저녁이 되면 다른 식당이나 가게는 한산한 반면, 청량음료집은 사람이 꽉꽉 차 있습니다)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는 것까지 배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평양에서 참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아침에 숙소를 나서면서 시작한 직경 1m도 안되는 아스팔트 땜질 공사에 7~8명의 인부가 동원되어 있는데,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끝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당연히 일은 한, 두명이 돌아가며 하고, 나머지는 일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토론(?)을 위해 공사 현장 옆에 둘러 앉아 공사현장을 바라보며 있었죠. 사회주의적 방식입니다. 박연폭포를 오르는  길에 만나는 흰돌로 나무 주변을 둘러친 모습을 보면서 완전고용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놀라운 아이디어를 봤습니다. 자본주의가 새로운 소비의 욕망을 추동시키기 위해 별로 필요도 없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 떄, (뭔가 빠진 듯 느껴지는 북쪽식) 사회주의는 완전고용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별로 필요도 없는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근대적 노동 개념에 의거한 쌍둥이는 그렇게 남과 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신기한 건, 바로 그 완전고용 속에서도 사람들이 자기 울 안의 옥수수는 더 열심히 키우고 있는 현실이겠죠? 단순히 자본주의가 위대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사회가 모두 재단하여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의 헛점을 지적하는 겁니다. 역으로 본다면 인간의 기본적 욕구도 자본이 통제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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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북에 대한 공포는, 남에 대한 북의 공포는 서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 출입사무국에 서 있는,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게 위해서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게 최선이란 간판..... 모기도 DMZ를 따라서 남북에 따로 산다고 믿는 것일까요? 북에서 남으로 돌아오면서(사진이 잘 나오진 않았지만) 버스 외부에 소독을 하는 모습이라니.... 사람들 한명씩은 왜 소독하지 않을까? 버스 외관엔 북의 무엇이 묻었기에 소독을 하나요? 아마 정말로 북의 어떤 질병이나 바이러스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을겁니다. 대신 하나의 상징적 통과의례 장치를 만든 것이죠. 이런 상징들이 물리적인 남과 북의 격리 상태를 더 공고히 시키는 장치는 아닐까요? 북쪽 안내원들은 일이 끝나고 남측 사람들이 떠나면 무엇을 할까요?


  마지막으로 소설 『1984』에 나오는 신어-이중언어에 대해... 북한 안내원들과 대화할 때 느껴지더군요. 분명 평양보다 훨씬 열려있지만 여전히 여기에도 이중언어의 사고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중언어에 대해서는 소설을 한 번 읽어보시길. 이건 북쪽 뿐 아니라 누구라도 신문이나 언론의 언사를 읽을 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요즘같은 공안정국(?!)에는.  (20080723 heavy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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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과 달리 조미료 맛이 거의 나지 않는 냉면은 맛있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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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헤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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