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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 『안착』, 『도시학』

신나라, 2005



깨달음과 허탈함 사이


"신중현"이라는 이름이 전설이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의도했건 아니건 어느 순간, 그는 전설이 되었다. 196,70년대 그의 작품이 담긴 LP는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되는 고가의 상품이 되었고, 심심치 않게 신중현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도 방송 되었다. 그러나 이 '전설' 광풍 속에서 세상, 아니 신중현 자신 마저 '전설 신중현'을 상정하고 '전설'로 활동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나 의문이 든다. 1990년대 이후 신중현은「너와 나의 노래」와 같이 엄청나게 길고 웅장한 대곡을 완성하고자 하는 꿈을 꾸거나, 『김삿갓』과 같은 (좀체로 청자가 동화하기 힘든)장편을 내놓았었다는 것은 '전설'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들이다. 사운드에 있어서 정말 뛰어났던『Body & Feel』역시도 이러한 '전설'에 화답하려는 "리얼뮤직"을 추구하는 '전설'의 일부였을 것이다.


2005년 내놓은 두 장의 음반 『안착』과 『도시학』을 들으며 처음 느껴지는 것은 '전설'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버린 노장의 음반이라는 점이다. 『안착』뒷면 그림처럼, 그저 기타 위에 앉아 자신의 음악 인생을 편안하게 되돌아보는 느낌이다. 그 편안함은 '세련됨'이나 '화려함'과 다른 종류의 것이다. 퍼즈와 디스토션이 섞인 톤의 기타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무게를 잃지 않는 거장의 손 동작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부클릿에 아무 것도 표기 되어있지 않지만 틀림없이 (이제는 문 닫은) "우드스탁" 스튜디오에서 신중현의 프로듀스,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키보드 연주까지)을 거쳤으리라 생각되는 음반의 사운드는 아주 소박하다. 아무런 오버 더빙이 없는 음반들은 틀림없이 녹음도 몇 번의 풀 테이크(full-take) 중에서 하나씩 고른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는 신중현이 최근에 지향하던 "리얼 뮤직"과 같은 맥락이다. 여튼 그는 사운드에 부담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잼을 하듯 녹음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느낌'이 잘 살아있는 테이크를 고른 듯 하다.  


음질을 떠나서 두 장의 음반을 지배하는 것은 정말로 잘 짜여진 멜로디다. 그의 기타 솔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철저하게 자신만의 멜로디에 집착한다. 신중현이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이상하게도 신중현에 대한 방점은 멜로디 메이커가 아니라 기타리스트로 옮겨갔다. 아마로 '최초의 록커'라고 신중현을 상정하고 보니, 작곡가/프로듀서로서의 신중현보다는 기타리스트 신중현이 더 추켜세우기 쉬웠기 때문이리라. 그가 처음 활약하던 1960년대 한국 음악계의 인적자원을 고려한다면 신중현은 분명 좋은 기타리스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신중현은 결코 테크닉이나 감각에 있어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아니다. 대신, 그는 남들이 갖지 못하는 개성 넘치는 멜로디 라인을 뽑아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신중현이 '전설'이라면 포인트는 바로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 이미 검증이 끝난 히트곡들을 모아놓은『안착』뿐 아니라 『도시학』의 「우리 사이」나 「그대는 떠나도」, 「만나면」, 등 신곡에서 들을 수 있는 멜로디는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신중현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개성과 그로 인한 빼어남이 묻어난다. 그의 멜로디는 무엇보다 꺽고 넘기는 기타와 보컬에 의해 만들어진다. 신중현의 보컬 능력을 떠나서 그가 만드는 보컬 멜로디 라인은 예전(김추자부터)부터 트로트와는 다른 독특한 꺽임과 울림이 있었다. 신중현의 기타를 평가한다면 보컬의 떨림과 꺽임을 기타로 재현하여 노래하듯 연주한다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중현 음악의 리듬 - 드럼과 베이스의 구성은 어떠한가? 놀랍게도 신중현 음악의 리듬은 순수한 록의 것이라기 보다는 텐션이 강한 펑키-록의 성격이 짙다. 즉, 흑인 음악의 감수성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안착』과 『도시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두 음반을 위한 밴드의 리허설 과정에서부터 신중현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직선적인 연주로 유명한 드러머인 "유상원"의 연주조차도 상당히 리듬 키핑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승한"의 드러밍에서는 더욱 심화되는데, 『도시학』의 분위기가 좀 더 블루지한 성격이 짙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베이스 라인 역시 철저하게 드럼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약간 더 직선적이고 호쾌함에 신경을 쓴 『안착』에서 베이스를 담당한 "신윤명"은 화려한 연주가 곳곳에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킥 드럼과의 호흡이 중심이다. 담담하면서도 도약하는 베이스 런이 곳곳에 숨어 있는데, 기타 솔로 시에는 단순한 리듬을 넘어서는 치밀한 베이스 라인이 귀에 들어온다. 연주 속에 감정이 실리는 것에 주안점을 둔 나머지 때로 불안한 신중현의 기타 톤과 연주를 안정되게 뒷받침하는 것도 베이스의 몫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타 연주가 좀 더 간결한 『도시학』에서 베이스를 담당한 "김재찬"의 연주가 신윤명에 비해 도약이 적고 함축된 리듬 살리기에 주력하는 것도 신중현의 의도를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두 음반이 절대적인 의미의 명반이라 할 수 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거장', '전설'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린 음악인 신중현의 솔직한 모습을 살펴보는 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음반을 듣는 사람들은 "신중현"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려 억지 칭찬을 꺼내거나 아예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 이 음반은 음악적으로 놀랄 필요(지난 십 여년간 그를 짓누르던 '전설'을 완전히 털어버린 그의 깨달음에는 놀라지만)도, 실망할 필요도 없는 음반이다. 그저 신중현의, 신중현에 의한, 신중현 음악이다. 심하게 솔직하고 심하고 소탈한........


누군가 1960년대 후반 록 음악의 녹음은 아날로그였지만 록을 이해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힘이 제대로 살아있는 완벽한 연주와 녹음을 이뤄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글쎄, 이 음반을 들으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들지는 모르겠디. 분명한 것은 녹음 상태를 떠나서 신중현의 음악은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타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만든 곡들도 여전히 개성있는 멜로디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깨달음을 얻고나서 세상과 소통할 필요가 있을까? 깨달음을 얻고도 세상 속에 몸을 담근채, 질투와 시기 속에서도 깨달음의 기쁨을 널리 알리려 했던 사람들(부처, 예수, 마호메트, 등등)이 그렇게 존경받는 것은 이치를 깨닫고 세상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도 세상과 소통하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박한 깨달음이 허탈해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친 자신의 모습을 가식 없이 드러내는 용기일 것이다. 이 두 장의 음반이 나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깨달음과 허탈함 사이"에서 자신을 버리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은 채, 벌거벗은 자신을 용기있게 보이는, 작은 소통의 문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설은 전설대로 남더라도, 역사의 평가는 이제 좀 더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치밀해져야 한다.

(2006. 7. 16)


『안착』   ★★★★

『도시학』 ★★★★☆


신중현 홈페이지 www.sjhmvd.com



● Track List


- 『안착』

01. 나는 너를

02. 바람

03. 봄비

04. 꽃잎

05. 미인

06. 미련

07. 빗속의 여인

08. 거짓말이야

09. 잊어야 한다면

10. 커피한잔


Guitar & Vocal - 신중현

Bass - 신윤명

Drum - 유상원



- 『도시학』

01. 내게로 와요

02. 우리 사이

03. 그대는 떠나도

04. 만나면

05. 내친구야

06. 그토록

07. 그미소

08. 기다려요

09. 그대는 떠나도(More)


Guitar & Vocal - 신중현

Bass - 김재찬

Drum - 이승한

Posted by 헤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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