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What!) 『3』
Band What/The Open Music, 2009. 12.
진실과 미학의 연결고리에서
먼저, 우리가 흔히 착각하게 되는 한 가지 사실로부터 얘기를 시작하자. 그것은 우리가 음반을 통해 듣게 되는 것은 밴드의 연주 자체가 아니라 녹음, 편집으로 재구성된 소리라는 점이다. 흔히 록의 힘은 순수하게 밴드가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록 음반(록 자체가 아니라)을 통해 우리가 듣는 것은 록 음악 자체와 조금 다르다. 이것은 단지 녹음되고, 조정된 소리일 뿐이다. 즉, 록은 연주되는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고, 록의 순간을 기록한 듯 보이는 음반은 그 순간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허구의 기록이다. 어쩌면 록은 무대와 리허설 룸에서만 존재하고, 녹음실에는 존재하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녹음 결과가 연주자의 능력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밴드의 연주라도 어떤 기술을 가진 어떤 기사가 어떤 스튜디오에서 어떤 장비로 녹음하고, 다시 이를 어떤 기술을 가진 어떤 기사가 어떤 스튜디오에서 어떤 장비로 믹싱하고, 마찬가지로 마스터링 하는가에 따라 음반에서 듣게 되는 소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테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이란 음악학자는 그래서 록의 미학을 새롭게 정의할 것을 주문한다.
사실 그래칙의 스튜디오 미학에 대한 지적은 분명 맞다. 우리는 록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노래에 대한 좋고 나쁨을 작곡이나 연주에 의해 판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귀는 참 간사하다. 실상 노래의 호오를 판단하는 첫 인상의 대부분은 녹음(이후 녹음은 믹싱, 마스터링까지의 과정 모두를 포함한다)된 소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음반에서 들리는 연주의 음색만으로도 우리는 어떤 노래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음악을 듣다보면 가끔씩 곡도 좋고 연주도 잘 하는데도 이상하게 뭔가 답답하고 맘에 차지 않았던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뿌옇고 묘한 기분의 7, 8할은 보통 (녹음된) 소리 때문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한 음반을 들으며 선명한 음질로 듣고 있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리마스터링은 재녹음도 리믹싱도 아니고 단지 최종적 볼륨만 세부 조정하는 것뿐임에도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이렇게 천지차이다. 물론 인간의 귀는 또 훈육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 알 수 없는 답답한 녹음 상태 사이로 ‘원래 연주되었을 상황’이라고 상상되어지는 연주의 흔적을 쫓기도, 찾아내기 한다. 이 과정에서 동영상이건, 클럽에서 보았던 라이브 연주건, 그 밴드가 실연하는 것에 대한 기억이 녹음-조정 과정서 잃어버린 소리까지 이미지로 재구성 해 낼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록 음반의 미학이 녹음을 통해 구성된 소리라 하더라도 나는 심정적으로, 록의 진정성은 밴드의 리허설 과정과 연주자 사이의 공감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조정된 녹음 결과라도 행간에 그 진실은 묻어난다고 믿는다. 순진한 꿈일지라도 말이다. 꿈과 현실 사이를 드러내는 일이 슬프게도 내가 하는 평론이란 행위다. 현실을 냉엄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 숨은 꿈의 영역까지 탐색하되, 꿈 때문에 결과물 자체를 포장하지 않는 일. 밴드 왓!(What!)은 분명 세 번째 정규앨범에 분노와 절박한 심정을 담아내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다. 녹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록의 미학에 비춰볼 때, 아티스트의 절박함을 표현하기 위해 절박한 물리적 상황에서 녹음한다고 그 정서가 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깟 미학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슬레이어(Slayer)의 음악을 듣고 청자들이 움찔하는 것은 밴드가 연주하는 소리를 청자의 오디오 기계와 고막이 견뎌낼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마치 끝장을 보려는 듯 날카롭고 무겁게 느껴지도록 치밀하게 계산, 고민한 프로듀서의 녹음기술로 재현된 미(美)이기 때문이다.
연주 자체로 시선을 돌려보면 하드록의 정석에 가깝다. 왓!은 초기에는 크리드(Creed)와 같은 멜로디가 강조된 포스트-그런지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보였는데, 점차 그런지의 조상격인 하드록, 초기 헤비메탈의 원초적인 형태로 진화(?!)해왔다. 직선적인 악곡과 질감 역시 악기별로 녹음한 것이 아니라 밴드의 스튜디오(라고 쓰고 합주실이라고 읽는다)에서 원테이크로 진행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인지 곡의 구성이나 리프는 단순하지만 단단한 집중력이 느껴진다. 이상훈이 구원투수로 등판할 때, 김바다 보컬-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틀곤 했다는 사실도 이런 심증을 더했겠지만, 악곡에도 간간히 5집 이후의 시나위의 느낌이 묻어있다. 당시 시나위의 드러머이자 신대철과 음악적 교감에서 최고조를 보였던 신동현이 작곡한 「슬픈 나무의 향기」는 마치 「죽은 나무」의 제 3편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신동현의 연주는 이미 시나위 시절부터 묵직한 리듬 위에 날카로운 크래쉬와 스플래쉬, 라이드 터치로 쇳소리의 맛을 제대로 낼 줄 아는 드러밍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기본적으로 타미 리(Tommy Lee)와 같은 계열이라 할 수 있는 테크닉보다 지구력이 뛰어난 드러머인데, 특징적인 심벌웍을 추가해 누가 들어도 ‘신동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스타일을 구축했다. 「미친 개들의 싸움」,「물고기의 입맞춤」등에서 예의 힘과 개성을 모두 챙긴 연주가 한껏 드러난다. 테크니션은 늘어났지만 자신만의 개성으로 뭉친 드러머 찾기가 오히려 힘들어진 한국 음악판에서 그의 연주는 단연 빛난다. 그러나 연주를 담아낸 녹음은 대단히 열악하다. 둔탁하게 묻혀버리는 킥과 플로우 탐 소리, 그리고 스네어와 탐탐 음량 사이의 균형이 다소 무너진 녹음 상태는 원래 연주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뛰어난 포웨이(4way)의 안정감을 여지없이 가려버린다. 물론 집중해서 듣는다면 숨겨진 연주를 포착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록 음반을 공연장과 같은 충분한 출력으로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녹음이 할 일은 공연장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한 개인들의 플레이어에서도 최대한 근사치라고 ‘믿을 법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상훈과 정세응의 리프 역시 록의 본령이다. 육감적인 펜타토닉에 입각한 리프와 블루지하면서도 날카롭게 빠지는 기타 솔로를 뿜어내는 정세응의 연주는 1집『What?』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한기택 이후 밴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프 메이커이기도 한 이상훈은 묵직하고 입자가 성근 톤을 선호한다. 이는 지난 앨범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하드록 스타일 리프를 얼마나 생생하게 잘 담아(녹음할)낼 수 있는가에 록 음악 녹음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선 기타리스트 스스로 자신의 톤을 스튜디오 상황에서도 요령껏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아니면 기타리스트가 선호하는 톤의 질감을 어떻게 녹음으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 녹음 기사를 만나야 한다. 이 앨범의 가능성은 두 가지다. 밴드가 원한 기타 사운드 자체가 (심하게)둔탁한 리프와 날카로운 기타 솔로였을 가능성 하나와 『What?』앨범과 비슷한 둥글게 뭉쳐지는 톤의 리프와 이를 잘라내는 듯 날카로운 기타 솔로 톤을 원했으나 리프 녹음 과정에서 저음의 입자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진실은 밴드만이 알 것이지만, 멤버들의 손으로 홈레코딩 방식으로 제작한 앨범이 녹음 장비나 기술이 완전치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미친 개들의 싸움」에서 기타 리프의 브레이크를 베이스 연주가 치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Panic」같은 곡의 기타솔로가 양껏 펼치기 위해서는 이를 받치는 베이스의 움직임이 살아나야 한다. 무대 위라면 장민규와 정세응의 연주는 불꽃을 튀기며 자신의 실력을 뽐냈을 것이다. 그러나 녹음의 과정은 무대 위와 비슷하게 사운드의 공간감과 질감을 흉내 내는 것이지, 반드시 두 연주자가 함께 연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녹음실에서 펼쳐진 베이스의 활약은 다른 파트와의 소리 배치 과정(믹싱)에서 지분을 잃고 말았다. 록 음악에 충분히 귀가 단련된 청자라면, 왜곡된 소리의 굴곡를 메우며 상상할 순 있다. 하지만, 밴드는 청자에게 그런 요구 할 권리가 없다. 믹싱 과정에서 밸런스를 잃은 소리까지 청자가 머리 속에서 조절해가며 록 음반을 들어야 할 의무는 없다.
일취월장한 이상훈의 보컬라인을 만드는 솜씨를 생각한다면, 밴드 왓!의 녹음은 더더욱 안타까워진다. 과거 「돼지의 꿈」이나 「널보며...」같은 슬로우 템포의 곡에서 그의 보컬라인은 기성 가요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소위 ‘뽕끼’가 담긴 그 노래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상훈만의 무엇이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스타일의「Panic」이나, 과거 같으면 내지르기 바빴을「물고기의 입맞춤」에서 완급을 조절하며 내뱉는 능력, 심지어 「재앙」(이 곡의 메인 리프는 분명 블랙새버드(Black Sabbath)의 「Sweet Leaf」의 영향 하에 있다)과 같은 몰아치는 곡에서의 다양한 표정의 목소리 연기까지 놀랍도록 자기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내지를 때도, 날카롭고 독특한 액센트를 넣으며 그만의 매력을 창조한다. 기타 솔로가 날카로운 것 역시 이상훈 특유의 툭툭 찝어대는 보컬에 화답하는 것이리라.
고도 자본주의 시대로 흘러가며, 개인의 자유는 구매의 자유로 슬그머니 축소되고 있다. 개인의 가치가 물건으로 대치되는 이 시대에 분노하는 음악이 록이다. 그래서인지 록은 저항의 음악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록이 지난 60여년 만들어 낸 미학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가공할 기타 연주는 당대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가장 숙련된 녹음기술자가 엄청나게 고민한 끝에 매우 세심하게 녹음되었다. 불타오르는 그의 연주는 지금도 그 훌륭한 녹음 결과를 통해 재현된다. 물론 바로 그 자본집약적 녹음 기술 미학이 있었기에, 록이 20세기의 대중음악이 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참 모순적이다. 록을 반드시 자본 친화적이라고만 매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음악인들이 록이라는 음악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 미학의 역사가 만들어 온 것과 반대 지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왓!의 『3』은 좋은 음반이다. 연주자로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연마한 결과-연주력도 훌륭하다. 또 록커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는 태도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 태도에 기인하여 밴드 스스로 앨범을 제작하는 자세에도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록 음반이 지금껏 견지해 온 녹음의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안타깝다. 누군가의 자본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록 음반의 역사가 만든 미학의 관점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혼자의 힘으로 그것을 이룩해 낸 아티스트의 음반(음악이 아니다!)을 만날 때, 우리는 기립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인디의 의미가 거대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아티스트 자주제작을 통해 태도와 음악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에 있다면, 인디 록 음반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과감한 실험과 자기 투자, 노력으로, 자기만의 퀄리티 레코딩 노하우를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리라. 그 어려운 길을 가라고 밴드에게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그것은 밴드가 가진 신념에 대한 자기 확신과 ‘다른 가치’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함께 할 때 가능해진다. 음반을 접한 나의 솔직한 심정은 가슴이 뜨거웠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긴 얘기 떠들 에너지를 준 밴드 왓!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20100308 헤비죠)
★★★
● 수록곡
1. Hey Man
2. 미친 개들의 싸움
3. 갇혀버린 일상
4. 재앙
5. 슬픈 나무의 향기
6. 물고기의 입맞춤
7. Change
8. 두 얼굴
9. Panic
10. 지배공화국
11. 검은 그림자
● 멤버
이상훈 - Lyric Messenger & Backer
신동현 - Drums
정세응 - Guitar
장민규 - Bass
● 앨범정보
Producer: Band What
Recording, Mixing Studio: Band What Studio
Mastering Studio: Band What Studio
Recording Engineer: 장민규
Mixing Engineer: Band What
Mastering: 장민규
Photo: Fans of Band What
Design Concept: Band What & 장윤수 (Violet-Moon.com)
Art Director: 장윤수 (Violet-Moon.com)

